[이응준의 시선] 북핵, 그 어두운 불구덩이의 미래

입력 2022-05-26 17:20   수정 2022-05-27 00:15

작가 고(故) 최인훈은 ‘서울신문’ 1980년 1월 8일자 칼럼에서 “우리가 올해까지 26년째 누리고 있는 평화를 축하하고 싶다. 우리라 함은 이 강산 삼천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고 썼다. 1950년 12월, 그는 원산항에서 미 해군수송선 LST를 타고 월남했다. 한 도시 인구가 시체 속 구더기처럼 뒤엉켜 멀미와 악취, 미쳐버린 한 사내가 부르는 노랫소리에 시달리며 바다를 떠돈 이 상처는 이후 그의 인생을 사로잡는 상징이 됐다. 이게 없었다면 《광장》의 주인공 국군포로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가는 원양선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지만, 현실은 상징 속에 존재한다. 상징을 분석하면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설계하면 인간을 지배한다.

김정은의 핵 포기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2009년도부터 나는 해왔다. 평화쇼가 진짜처럼 난무할 적에도 역시 믿지 않았다. 상징을 읽어 야바위 같은 현실에 속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일성교’는 백과사전에 등록된 종교다. 공산주의가 기독교의 이단인 데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김일성(김일성의 어머니는 강반석이고 ‘반석’은 ‘베드로’를 뜻한다)은 스스로 성부, 김정일은 성자, 주체사상은 성령으로서 성삼위일체를 구성한다. 한데 그렇다면 예수인 김정일은 제사장들의 권위와 속박에서 인민을 해방하고 개인이 신과 직접 소통하는 일, 즉 ‘개혁개방’을 추진했어야 한다. ‘구약’을 깨고 ‘신약’을 실현했어야 맞다. 남한주체사상의 ‘로마서’인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남한주사파의 사도 바울 김영환이 1991년 강화도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알현했을 때 정작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잘 모르더라는 웃지 못할 증언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성자로서의 김정일과 성령인 주체사상은 본색이 허울인 ‘가짜 상징’이니 아직도 북한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야훼 김일성만이 형형한 구약시대인 것이고, ‘북핵’은 바로 그 김일성의 망령이 육신을 얻어 현현(顯現)한 것임을. “세계사는 신의 현현이다”고 주장한 이는 헤겔이다. 정치가 아니라 경제(노동)가 세상의 실체라며 철학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마르크스를 흉내내 나는 한반도와 한국인을 조종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종교적 상징과 에너지, ‘샤머니즘’이라고 믿는다. 김정일의 딜레마는 김정은에게도 동일하다. 북핵을 포기하는 순간 야훼(북핵)가 삭제된 구약에서 야훼의 모조품인 자신은 당연히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 어떤 좋은 여건을 제공해준들, 북핵이 사라지는 경우는 오직(최소한)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뿐이다. 북한의 구약을 깨고 신약의 문을 열어젖힐 그리스도는 누구일 것인가? 3대 세습 성공에 절망한 나머지 조선노동당 창건기념일에 ‘노아의 방주’처럼 생긴 욕조 안에서 질식한 듯 숨져 있던 황장엽은 그런 역할을 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는 목수였으므로, 예수가 못 박힌 나무십자가는 예수가 만든 십자가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나는 최인훈이 말하고 있는 “이 강산 삼천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반도와 통일 대한민국의 메시아적 주체가 돼 자신들의 신약을 상징하게 되길 희망한다.

공존 이전에 공멸을 염려하는 나라에 복이 있다. 북핵의 위험성을 외면하는 것은 68년째 누리고 있는 평화에 감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오는 세상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악이라도 범하고 만다”고 법구경은 경고한다. 김정은의 북핵은 체제 보장용이 아니라, 저 상징의 틀이 깨어지는 와중에 ‘자살적 공격용’으로 쓰일 공산이 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OSS(전략사무국)는 정신분석학적 비밀보고서를 통해 히틀러의 자살을 정확히 예측했다. 다행히 히틀러에게는 핵이 없었다.

“우리의 현실이 가혹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혹한 속에서도 행복에의 길은 다 막힌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정치가의 경륜이라든지 사상가의 통찰이라든지, 국민의 지혜라든지 하는 인간적 역량은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있게 마련인 생명과 창조에의 길을 알아보는 힘을 말하는 것일 게다.”

4년 전 별세한 최인훈이 42년 전에 쓴 저 글에서 ‘우리’에게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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